고란 블라오비치는 은퇴한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NK 오시예크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GNK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두 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칼초 파도바, 발렌시아, 파나티나이코스 등에서 뛰었으며, 파나티나이코스에서 그리스 더블을 달성하고 2004년에 은퇴했다.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으로 52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으며,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팀의 3위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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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경력 중 주요 성과로는 1993–94 크로아티아 1부 리그에서 디나모 자그레브 소속으로 2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른 것이 있다. 이는 당시 크로아티아 리그 최연소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또한, 1999년에는 발렌시아 소속으로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을 경험했고, 2004년에는 파나티나이코스에서 그리스 리그와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했다.
노바그라디슈카에서 태어난 블라오비치는 1989년 NK 오시예크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HAŠK 그라단스키(현 G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1992-93 시즌과 1993-94 시즌에 두 시즌 연속으로 크로아티아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1993-94 시즌에는 2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는데, 이 기록은 당시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이었으며 13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2006-07 시즌에 에두아르두 다 실바가 같은 클럽에서 34골을 넣으며 경신했다. 블라오비치는 크로아티아 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다 골을 기록한 최연소 선수로 남아 있다.
이후 해외로 진출하여 1994-95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칼초 파도바로 이적했다.[9] 첫 시즌에는 리그에서 5골을 넣는 데 그쳤지만, 제노아 CFC와의 세리에 A 잔류 플레이오프에서 중요한 골을 넣고 승부차기에서도 성공하며 팀의 잔류를 이끌었다.[10] 이듬해인 1995-96 시즌에는 23경기에 출전하여 13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 FC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이던 2001년 10월 20일, 파나하이키 1891과의 경기에서는 혼자서 5골을 넣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12] 2003-04 시즌에는 팀의 리그와 컵 더블 달성에 기여했으며, 2004년 6월 현역에서 은퇴했다.
2. 2. 해외 진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1994-95 시즌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파도바로 이적하며 해외 무대에 진출했다.[9] 첫 시즌 리그에서는 5골을 기록했고, 같은 해 제노아와의 세리에 A 잔류 플레이오프에서 득점하고 승부차기에서도 성공하며 팀의 1부 리그 잔류에 기여했다.[10] 이적 두 번째 시즌인 1995-96 시즌에는 리그 23경기에 출전해 13골을 넣는 활약을 보였다.
발렌시아를 떠난 후에는 그리스의 파나티나이코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1년 10월 20일에는 파나하이키 1891과의 리그 경기에서 혼자 5골을 넣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12] 2004년에는 파나티나이코스 소속으로 그리스 리그와 컵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블라오비치는 파나티나이코스에서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2004년 6월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블라오비치는 1992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10년 넘게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총 52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1] (2001년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B팀으로 출전하여 1골을 추가했다).[2]
블라오비치는 1992년 7월 5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13] 데뷔 초반에는 출전 기회가 적었고, 1995년에는 뇌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3] 그러나 1996년부터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다.
1995년 뇌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후,[3]UEFA 유로 1996 예선전에 단 한 차례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6년 초부터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 3월 13일에는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 데뷔골을 포함하여 완벽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13]
이후 잉글랜드에서 열린 UEFA 유로 1996 본선 토너먼트에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크로아티아는 이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으나, 결국 우승팀이 된 독일에 패배했다.[13] 블라오비치는 크로아티아가 치른 4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특히 터키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20분을 남기고 알렌 복시치를 대신하여 교체 투입되었고, 86분에 결승골을 넣어 크로아티아가 주요 국제 대회 본선에서 기록한 역사적인 첫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11]
3. 2. 1998년 FIFA 월드컵
블라오비치는 프랑스에서 열린 1998년 FIFA 월드컵에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크로아티아의 7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만 90분 전체를 소화했다. 독일과의 8강전에서는 80분에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어 3-0 승리를 이끌었고, 3위 결정전에서는 네덜란드를 꺾고 팀은 최종 3위를 차지했다.[13]
3. 3. 2002년 FIFA 월드컵
1년 반 동안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었던 블라오비치는 2001년 1월 국제 경기에 복귀했다.[2] 그는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4]
블라오비치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본선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되었지만,[4][13]크로아티아가 치른 조별 리그 3경기 모두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4] 크로아티아는 이 대회에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4]
그는 2002년 8월 21일 웨일스와의 친선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4][13]
GNK 디나모 자그레브 시절 두각을 나타내며 1992-1993, 1993-1994 두 시즌 연속 프르바 HNL 득점왕을 차지했다. 특히 1993-94 시즌에 기록한 29골은 13년 동안 깨지지 않은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이었으며, 에두아르두 다 시바가 2006-07 시즌에 같은 클럽 소속으로 34골을 기록하며 경신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한 시즌 최다 골을 기록한 최연소 선수로 남아 있다.
1994-95 시즌 세리에 A의 칼초 파도바로 이적했다.[9] 첫 해에는 리그 5골에 그쳤지만, 같은 해 제노아 CFC와의 세리에 A 잔류 플레이오프에서 1골을 넣고 승부차기에서도 성공하며 팀의 잔류에 기여했다.[10] 이적 2년차인 1995-96 시즌에는 23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했다.
이후 파나티나이코스 FC로 이적하여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파나티나이코스 시절인 2001년 10월 20일, 파나하이키와의 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12] 2003-04 시즌에는 팀의 수페르리가 엘라다와 그리스 컵 우승, 즉 더블 달성에 기여했다.
블라오비치는 1992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10년 이상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총 52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1] (2001년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B팀으로 출전하여 1골을 추가하기도 했다).[2]
그는 1992년 7월 5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3년 반 동안 단 4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했으며, 1995년에는 뇌 혈전 제거 수술을 받았다.[3] 이로 인해 UEFA 유로 1996 예선에는 단 한 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6년 초부터는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특히 1996년 3월 13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고, 이는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골이기도 했다.[13]
블라오비치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UEFA 유로 1996 본선에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팀이 8강에서 독일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4경기에 모두 출전했다.[13]튀르키예와의 대회 첫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20분을 남기고 알렌 복시치와 교체 투입되어 86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이 골은 크로아티아가 주요 국제 대회 본선에서 기록한 첫 번째 골이었다.[11]
2년 후, 1998년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는 크로아티아가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크로아티아가 치른 7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며[13], 독일과의 8강전에서는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어 3-0 승리를 이끌었다.[13]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준결승전에서는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약 1년 반 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던 블라오비치는 2001년 1월 국제 무대에 복귀했다.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4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그는 2002년 FIFA 월드컵 본선 최종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나, 조별 리그 3경기 모두 출전하지는 못했고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2002년 8월 21일 웨일스와의 친선 경기였다.[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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